금산사는 미륵신앙과도 관련이 많아서 내 흥미를 더욱 자극했었다. 미륵신앙에 대해 수업에서도 배웠고 그 실체를 직접 본다는 사실에 대해 너무 기대되었다. 이 장에서는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 진표율사와 미륵신앙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내가 아는 바를 서술하겠다.
2. 미륵신앙
1) 미륵불의 어
하는 신라시기에 불교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당시 상층민에게 불교는 호국불교의 모습으로 그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층민들에게 불교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나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신라 때 크게 행해졌던 진표의 점찰법회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진표는 몸이 부서지는 맹렬한 참회를 행한 뒤 점찰법에 의한 참회불교의 체계를 정립하였고, 그의 뒤를 이은 영심과 심지 등도 참회불교에 의한 해탈을 추구하였다.
- 지장신앙 地藏信仰 : 불교에서 지장보살을 신봉하는 보살신앙. 현존하는 문헌에 보이는 신라 지장신앙과 그 신앙의 모임인 점찰법회
미륵도장인 금산사 절을 가게 되었다. 불교사찰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절이다.
이장에서는 교재에 나온 문화자원 중 한옥, 궁궐, 전통정원, 불교, 국악, 가면극 중 하나를 체험한 후, 체험한 문화자원의 역사적 배경을 교재 및 기존 서적에 기초해서 고찰하세요.
1. 한옥, 궁궐, 전통정
진표율사의 경우도 이와 같다. 원효대사 등 대표적, 대중적 인물과 달리 진표율사는 종교의 테두리에서 대중으로 나가지 못했다. 모든 인물이 대중에게 알려질 필요는 없으며 주는 교훈이 불교를 빼놓고 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지만 진표율사의 발자취는 우리나라 이곳, 저곳에 뚜렷이 남
진표율사가 정말 이러한 경전의 내용이나 부처의 일의 모르고 당시 불교에 대한 반발로 고행을 했단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부처의 중도 수행을 역행하는 극단적인 고행으로 자신의 반발을 표현하려 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불계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신앙으로써의 수행방법의 하나였을 뿐일까
1. 신라에서의 미륵신앙의 전개
(1) 미륵신앙의 이해
미륵신앙은 지난날 석가모니불이 그 제자중의 한사람인 ‘미륵’에게 장차 성불하여 제1인자가 될 것이라고 수기(授記)한 것을 근거로 삼고 이를 부연하여 편찬한 『미륵삼부경』을 토대로 발생한 신앙으로 그 중심은 『미륵(Maitreya)』이며 『자씨
법회 등에 의해 왕실 권력과 더욱 밀착되었다.(참고) 특히 대규모의 사찰, 탑(석가탑과 다보탑), 불상(분황사 약사여래불상), 종(성덕대왕신종, 황룡사 종)을 지어 호사한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 보이고 왕실 귀족의 안녕과 복을 기원해주었다. 그 대가로 왕실 귀족으로부터 엄청난 대가를 기부 받았다. 경
신앙해온 불교를 조리있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곳 서울역 광장을 지난 이 불자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어느때 별안간 이교도가 '불교가 뭐냐'고 물어왔을 때 나의 모습은 어떻할까를 모르긴